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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도들의 방황과 도통 공부
  • 무인(戊寅 : 道紀 68, 1938)년에 하루는 박공우의 교단에서 신앙하는 홍순문(洪淳文), 홍순옥(洪淳玉), 박인택(朴仁澤), 박인석(朴仁錫) 등이 변산에 모여 도통 공부에 들어가거늘
  • 다른 여러 교파에서도 많은 신도들이 의기투합하여 부안 변산으로 모여드니라.
  • 이 때 홍순문을 교주로 하고 부안군 산내면 지서리(山內面 知西里)를 본거지로 하여 각자 움막을 짓고 공부에 들어가니
  • 오성산 도장에서 태모님을 모시던 전준엽, 강재숙, 전기찬 등 여러 성도들도 허망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방황하다가
  • 서로 의논하기를 “우리도 변산 한적한 곳에 움막을 짓고 도통 공부를 위한 기도를 드리자.
  • 진표율사와 진묵대사가 변산에서 공부했고 상제님께서도 변산 개암사를 다니셨으니 우리도 도통하려면 변산에 가서 공부를 해야 한다.” 하며 변산으로 향하니라.
  • 이 때 고민환전선필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니라.
  • 일제의 검거령과 성도들의 수난
  • 당시 일제가 전쟁 준비에 광분하면서 독립운동을 경계하여 전국에 수색령을 발동하고 검거선풍을 일으키니 시국이 매우 어수선한지라
  • 도장에서는 상제님 어진조차 제대로 모시지 못하고 은밀히 신앙하는데
  • 10 임오(壬午 : 道紀 72, 1942)년 4월에 이르러 ‘변산 쪽에서 대규모의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모여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전주 경찰서에서 수십 명의 형사대를 즉각 출동시켜 모조리 잡아들이니라.
  • 11 이에 혹독한 고문으로 죽는 신도가 속출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음이 두려워 ‘강증산 상제님의 도(道)를 믿고 독립운동을 위한 기도를 하였다.’ 하고 거짓 자백을 하니
  • 12 한 사람도 빠짐없이 즉결 처분에 넘겨지고 투옥된 전준엽, 강재숙 등 13명의 신도들이 옥사(獄死)하니라.

  • (증산도 道典 11:420)




  • 9절 420:9 태모님께서 선화하신 후 성덕면 주재소 주임이 오성산 도장으로 찾아와 교단 활동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며 어진을 주재소로 압수해 갔다. 이에 고민환 성도가 성덕면장 강필문을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상제님 어진 보호를 부탁했다. 그리하여 주재소에 몇 달간 보관하던 어진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 12절 420:12 ‘변산 도 공부 사건’으로 재판 받은 신도들 중 성명이 알려진 16명은 다음과 같다.
    홍순옥(洪淳玉), 국채준(鞠採準), 김만암(金萬岩), 강재숙(姜在淑), 박승주(朴昇柱), 이내룡(李乃龍), 강양원(姜陽元), 이동(李童), 박일명(朴日明), 류상(柳相), 김종순(金宗順), 서기표(徐錤標), 이득춘(李得春), 김재천(金在天), 전봉균(田鳳均, 전준엽), 전정풍(田正豊, 전기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