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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석 성도 고민환의 입도
  • 이 해 8월에 옥구 근처에 괴질이 크게 유행하여 사람이 많이 죽으매 태모님을 찾아와 의지하는 신도가 점차 많아지니라.
  • 이 때 옥구에 사는 고민환(高旻煥)과 이근우(李根宇)가 조종리를 찾아와 태모님을 뵙거늘
  • 민환은 일찍이 승려 생활을 하면서 불교는 물론이고 유교와 신학문까지 두루 공부하였더라.
  • 태모님께서 두 사람을 보시고 “어디에 사느냐?”고 물으시니 민환이 “옥구군 성산면 성덕리(聖山面 聖德里)에 삽니다.” 하고 아뢰거늘
  • “좋은 곳에 산다.” 하시고 “그곳을 떠나지 말라.” 하시며 세 번을 다짐받으시니라.
  • 또 물으시기를 “그곳에 오성산(五聖山)이 있느냐?” 하시므로 민환이 “있나이다.” 하고 대답하니
  • 다시 “그러면 그곳에 수천 칸이라도 지을 만한 집터가 있느냐?” 하시거늘 “수만 칸이라도 지을 수 있나이다.” 하고 아뢴즉
  • 태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좋은 곳이라.” 하시니라.

  • (증산도 道典 11:51)




  • 2절 51:2 고민환(高旻煥, 1887∼1966). 본관 제주(濟州). 호는 성포(聖圃). 500석지기의 부호가로 군산 은적사에서 승려 생활을 했었다. 사욕이 없고 남과 시비하는 것을 싫어했는데 마치 김형렬 성도와 성품이 비슷했다 한다. 태모님께서 칠성용정 공사 이후에 도장의 모든 일을 위임하셨으며 ‘성포(聖圃)’라는 도호를 내려 주셨다. 훗날 상제님과 태모님의 성적을 수집하여 『선정원경』을 집필했다.
  • 3절 51:3 당시 선교사들이 세운 군산 영명학교에서 영어를 공부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성이 높았다. <고민환 성도의 손자 고석곤(1951~ )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