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제님 성탄치성을 처음으로 봉행하심
  • 정미년 동짓달에 상제님께서 경석에게 자옥 도수(自獄度數)를 붙이시고 문밖 출입을 금하시니 생계가 말할 수 없이 궁핍해지거늘
  • 신해년 7월에 이르러서는 식량을 구하지 못하여 가족이 10여 일 동안이나 굶어 부황(浮黃)이 나서 일어나지 못하는지라
  • 이 때 마침 김경학(金京學)이 지나는 길에 들러 그 광경을 보고 크게 놀라 돌아가서 벼 두 섬을 보내거늘 이것으로 위기를 면하니라.
  • 8월 어느 날 정읍 부호 박기철(朴基喆)이 경석에게 와서 “생계를 너무 등한히 하지 말라.” 하고 무곡(貿穀)을 권고하며 자금을 융통해 줄 의사를 표하거늘
  • 경석이 이웃 마을 왕심리(旺尋里)에 사는 안도심(安道心)에게 그 사유를 말하고
  • 논 스물여덟 마지기의 증서를 빌려 박기철에게 저당잡힌 뒤 돈 600원을 빚내어 추곡 무역을 시작하려 하니라.
  • 9월 중순에 수부님께서 경수의 집에서 대흥리로 돌아오시어 경석에게 상제님 성탄치성을 올릴 것을 명하시니
  • 경석이 장사하려던 자금에서 치성비를 조달하여 제수(祭需)를 마련하고 치성을 준비하니라.
  • 이에 수부님께서 19일 새벽에 치성을 봉행하시니 이로부터 상제님 성탄치성이 시작되니라.

  • (증산도 道典 11:18)




  • 5절 18:5 왕심리. 순흥 안씨(順興安氏) 집성촌으로, 태모님께서 기사( 道紀 59, 1929)년 9월 21일에 조종리를 떠나 이곳으로 가셨다. 11편 248장 2절 측주, 11편 271장 6절 측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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