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렬 셋째 딸의 죽음
  • 경석이 약장과 궤와 철연자와 삭도와 횃대와 부벽시(付壁詩)와 액자 등 모든 기구와 방바닥의 먼지까지 쓸어서 짐꾼에게 지우고
  • 마침내 도배지를 떼니 일찍이 상제님께서 “이 종이를 뜯을 날이 속히 이르러야 하리라.” 하신 말씀이 응험되니라.
  • 경석이 형렬에게 돈 20원을 주며 말하기를 “따님의 병이 위중하다 하니 약소하나마 약값에 보태어 쓰십시오.” 하고 인사한 뒤
  • 비바람을 무릅쓰고 마을 앞 정문(旌門) 거리에 이르니 풍우와 뇌성이 그치고 형렬의 집에서 곡성(哭聲)이 들리더라.
  • 약장은 곧 안장롱
  • 잠시 후 형렬의 집에서 한 사람이 달려와 ‘김 부인이 돌아가셨다.’는 부고(訃告)를 전하거늘
  • 이로써 일찍이 상제님께서 형렬에게 “약장은 곧 안장롱(安葬籠)이니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니라.
  • 이 때 경석은 상제님 어천 직전에 자신이 왕비 비(妃) 자를 죽은 어미 비(?) 자로 그릇 쓴 것이 ‘김 부인의 운명에 대한 상제님의 예시’였음을 깨닫게 되니라.
  • 장례비를 후히 내려 주심
  • 경석이 약장을 지고 원평에 당도하니 태모님께서 “약장 지고 올 적에 무슨 소리가 난 일이 있더냐?” 하시거늘
  • 경석이 “예, 곡성이 있었습니다.” 하고 김 부인이 사망한 사실을 아뢰니
  • 10 태모님께서 “불쌍하다.” 하시고 치상비를 후히 주시며 “장사(葬事)에 보태어 쓰게 갖다 주어라.” 하시니라.

  • (증산도 道典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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