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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학군의 9월 재기포
  • 전주화약(全州和約) 이후 동학군의 요구대로 폐정개혁안이 시행되고 호남 전역에 집강소(執綱所)가 설치되어 동학군이 치안과 민정을 맡아 잠시 안정되는가 하였으나
  • 일본군의 대궐 침범과 패륜적인 내정 간섭으로 조선은 다시 걷잡을 수 없는 망국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 기회만 노리던 일본군이 드디어 아산만 풍도(楓島) 앞바다에서 전단(戰端)을 열고 청군에 포격을 개시하니 이로써 청일전쟁이 불을 뿜기 시작하니라.
  • 이후 청일전쟁에서 연전연승하던 일본은 평양 전투의 승리를 계기로 조선의 내정에 더욱 깊이 개입하며 본격적으로 동학군 토벌에 나서거늘
  • 이에 외세에 기울어 가는 국운을 통탄한 동학군의 수뇌들이 9월에 전주 삼례에서 회동하여 화전(和戰) 양론의 대립 끝에 다시 기병을 결정하니
  • 마침내 동학군은 전명숙을 대장으로 하여 손화중(孫華仲)은 무장에서, 김개남(金開南)은 남원에서, 김덕명(金德明)은 금구 원평에서, 차치구와 손여옥은 정읍에서, 최경선은 태인에서, 정일서는 고부에서, 류한필은 함열에서, 오동호는 순창에서, 기우선은 장성에서, 손천민과 이용구(李容九)는 청주에서 일어나 삼남의 강산과 전국을 뒤흔드니라.

  • (증산도 道典 1:52)




  • 1절 52:1 집강소. 동학군이 설치한 민정기관으로 총 53군에 두어 지방의 치안과 재정을 맡아보았다. 지방자치의 효시.
  • 3절 52:3 풍도. 조선시대 말까지 ‘단풍나무 풍(楓)’자를 써서 풍도(楓島)로 표기했으나, 섬에 농토가 없고 근해 어장에 어획물이 부족하여 1906년 이후 ‘풍년 풍(豊)’ 자로 바꾸어 풍도(豊島)가 됨.
  • 3절 52:3 청일전쟁(1894∼1895). 동학혁명 때 청국이 출병하자 천진조약(1885)을 빌미로 출병한 일본이 1894년 7월 23일 아산의 풍도 앞바다에서 전단을 열고 8월 1일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천하의 난을 동하게 한 첫걸음이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