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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종리 강씨들의 비극과 체포령
  • 태모님께서 조종리를 떠나실 무렵 17, 8세 된 응칠의 둘째 아들과 맏손자가 별다른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숨이 끊어지거늘
  • 응칠의 집안에서는 죽은 사람도 살려 내는 권능을 가지신 태모님께서 살려 주시지 않는다고 원성이 높더라.
  • 또 태모님께서 조종리를 떠나신 지 얼마 후에 10여 명의 순검대가 출동하여 조종리에 일대 검거 선풍이 불어닥치니
  • 이 해에 응칠은 이미 일경을 피해 김제군 진봉면 상궐리(進鳳面 上蕨里) 초전(草田) 마을로 이사하고 없거늘
  • 그 후 순검대가 중풍으로 누워 있는 사성을 두목으로 몰아 잡아들이려 하매
  • 마침 일본인 농장에서 감독으로 일하는 넷째 아들 무용(武容)의 유창한 일본말 덕에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니라.

  • (증산도 道典 11:275)




  • 4절 275:4 강응칠. 강응칠 성도는 이사한 후에도 조석으로 청수 올리고 시천주주 수련을 하였다. 매월 두 차례씩 20여 명이 모여서, 금줄 치고 시루떡 찌고 개 잡아서 치성을 모셨다. 후손들에게 당부하기를 “이 도를 믿어야 이 사회 속에서 살아 나오지, 그렇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했다.〈강응칠 성도의 자부 임복례(1920∼?)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