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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화동 이상호의 접근
  • 경오년에는 태모님께서 별다른 공사를 행하시지 않고 지내시니라.
  • 이 때 금산면 용화동 이상호 교단에서 태모님을 시봉하기를 간절히 원하여 연락이 끊이지 않거늘
  • 태모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며 말씀하시기를 “상제님 말씀에도 ‘네가 정읍에 있으면 몸이 클 것이요, 금구로 가면 몸이 부서진다.’ 하셨느니라.” 하시니라.

  • (증산도 道典 11:292)




  • 2절 292:2 이상호의 의도. 이상호는 『대순전경』을 편찬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세 살림 도수를 인식하게 되었고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교단을 세운데다, 타 교단에서 이미 상제님 친족들을 모셨기 때문에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태모님을 모시려고 했다.(태모님 성도들의 주장)
  • 3절 292:3 금구로 가면. 태모님께서 상제님의 이 말씀을 마음에 두시고 안 가시려 했다. 결국 제3변 추수 지도자의 기반을 닦으시기 위해 용화동으로 가셨는데, 실제로 그곳에서 몸과 마음이 부서질 정도로 많은 고초를 겪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