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듣기
  • 대흥리를 떠나 부용역에 내리심
  • 태모님께서 담뱃대 하나만 들고 걸어서 정읍역에 이르시니 채규일(蔡奎壹), 채규철(蔡奎喆), 채경대(蔡京大)가 쫓아와 돌아가실 것을 간절히 청하거늘
  • 태모님께서 듣지 아니하시고 기차를 타고 부용역(芙容驛)에 내리시니 규철과 경대가 그곳까지 따라왔다가 그냥 돌아가니라.
  • 이 날 새벽 종서의 꿈에 태모님께서 부용역에 계시는 것이 생생히 보이거늘
  • 즉시 나가 보니 과연 태모님께서 새벽 공기가 차가운데 역에서 홀로 떨고 계시는지라
  • 종서가 태모님을 업고 집으로 돌아와 머무르시게 하고 각처 성도들에게 연락하매 여러 성도들이 내왕하니라.
  • 이 때 태모님께서는 단지 치성을 올리실 뿐이거늘 종서의 장남 병원(柄元)이 미신타파를 운운하며 매우 싫어하더라.

  • (증산도 道典 11:45)




  • 1절 45:1 채규일(蔡奎壹, ?∼?). 전남 무안군 비금면 출신으로 아우 채경대와 함께 갑인(道紀 44, 1914)년에 대훙리 교단에 입교하였다. 24방주 중 첫머리에 오른 인물로 후에 보천교 사정방의 화방주(火方主)로 임명되었다.
  • 1절 45:1 채경대(蔡京大, 1890∼1940). 보천교 사정방의 소한주(小寒主)로 활동하다가 계해(道紀 53, 1923)년 11월에 보천교를 탈퇴하여 객망리에 상제님의 사당을 세우고 포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