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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종리를 떠나 왕심리로 가심
  • 조종리 강씨 신도들의 모략과 방해 공작으로 인해 전국 각지에서 왕래하던 많은 신도들의 발길이 대부분 끊어지거늘
  • 태모님께서 심히 불의한 응칠의 행위와 조종리 강씨들의 무도함에 크게 노하시니라.
  • 그 뒤 9월 18, 9일경에 이르러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인간의 원한이나 신명의 원한이 동일하니 할 수 없는 일이로다.” 하시고
  • 정읍으로 이사하실 뜻을 말씀하시니 어떤 신도는 ‘신씨 가문의 일을 하러 간다.’고 비웃기도 하니라.
  • 태모님께서 19일 상제님 성탄치성을 봉행하신 뒤 21일에 오직 담뱃대 하나만 들고 몇몇 성도들과 함께 어진을 모시고 조종리를 떠나시어
  • 순흥 안씨(順興安氏) 집성촌인 정읍 왕심리(旺尋里)로 옮겨 가시니라.
  • 이 때 도장에서 곁방살이하던 강휘만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이 집을 잘 지키고 있으라.” 하시며 도장 살림을 맡기시니
  • 이는 휘만이 비록 도문에 늦게 들어왔으나 일심으로 주문을 읽고 다니므로 그 마음자리를 보시고 은혜를 베푸심이거늘
  • 휘만이 큰 도장을 그냥 받을 수 없어 약간의 사례금을 올리매 그 돈을 이사하는 비용으로 쓰시니라.
  • 10 이 날 태모님께서 떠나실 때, 몇 년을 따르던 강사성, 강응칠 등 조종리 강씨 신도들은 아예 나와 보지도 않더라.

  • (증산도 道典 11:271)




  • 6절 271:6 왕심리로 가신 이유. 왕심리는 순흥 안씨(順興安氏) 집성촌으로 이 마을 뒷산인 비룡산에는 상제님께서 천지의 수기(水氣)를 돌리는 공사를 보신 피난동 안씨 재실 추원재(追遠齋)가 있다. 태모님께서 셋째 살림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곳을 거쳐 용화동으로 들어가신 것은, 상제님의 대업을 매듭짓는 제3변 추수 지도자가 누구이며 또 어디서 어떤 과정으로 출세하게 되는가를 몸소 보여 주시고 그 앞길을 열어 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