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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산사 미륵불 화재 사건
  • 이 달 9일 밤에 금산사 미륵전에서 불공을 드리던 사람들이 실수하여 육장(六丈)의 미륵불상에 화재가 일어나니라.
  • 오금해(吳錦海)가 구릿골에서 그 화광(火光)을 보고 금산사가 모두 불타 없어지는 줄 알았더니
  • 좌우에 시립한 보처 보살과 미륵전은 그슬리지 않고, 가운데에 서 있는 미륵불만 불에 타서 왼쪽으로 넘어졌더라.
  • 그 뒤 미륵불을 다시 조성할 때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금산사 건너편에 있는 청련암(靑蓮庵)에 큰 은행나무가 있으니 그 나무로 목불을 조성함이 좋을 것이라.’ 하거늘
  • 금산사 주지 황성렬(黃成烈)이 청련암에 건너가 살펴보니 그만하면 됨직하여 얼마 후 그 은행나무를 베어 와서 자로 재어 보매 그 길이가 39척(尺)이더라.
  • 이에 장공 김복진(金復鎭)이 조각을 시작한 지 2년 9개월 만에 완성하여 무인(戊寅 : 道紀 68, 1938)년 9월 3일에 육장 반(六丈半)의 미륵불을 모시거늘
  • 이로써 일찍이 상제님께서 “금산사 미륵불은 육장이나 나는 육장 반으로 오리라.” 하신 말씀이 응험되니라.

  • (증산도 道典 11:375)




  • 2절 375:2 오금해(吳錦海, ?~?). 금산사의 승려로 상제님의 시중을 들었던 인물이다. 2편 14장 본문 및 측주 참조.
  • 4절 375:4 미륵불. 옥내 입불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39척(11.82m)이다. 귀의 크기만 다섯 뼘이나 될 정도로 컸기 때문에 서울에서 만들어 트럭으로 날랐다. 석고로 만든 불상이 거대하여 청련암에서 잘라 온 은행나무를 뼈대로 받치고 불상을 세웠다.
  • 6절 375:6 김복진(金復鎭, 1901∼1940). 한국의 근대 조각가. 호 정관(井觀). 충북 청원 출생. 동경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하였고 최초로 서양 조각을 한국 화단에 도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