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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종리 도장에서 치성을 모실 때
  • 태모님께서 조종리에 계실 때 큰 치성이 있으면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전국 각지에서 많은 신도들이 모여들거늘
  • 건넛마을 원조(元祖)에서 보면 흰 도포에 큰 갓을 쓰고 길을 따라 일렬로 걸어오는 신도들의 모습이 마치 빨랫줄에 흰 빨래를 나란히 걸어 놓은 듯하더라.
  • 이렇게 치성에 참석한 신도가 많을 때는 수백 명이나 되니 임시 변소를 수십 개씩 짓고
  • 신도들은 도장 뒷산에 가마니를 깔고 앉아 치성을 기다리니 조종리 일대를 하얗게 덮을 정도더라.
  • 이 때 주로 경상도에서 오는 신도들이 치성에 바칠 황소를 몰고 오거늘
  • 쇠짚신을 신은 소가 먼길을 걸어서 오느라 다리를 절뚝거리더라.
  • 소가 들어오면 도장 뒷산의 소나무에 매어 두었다가 잡아서 제수(祭需)로 쓰는데
  • 어느 때는 이것도 모자라 조종리 근방에서 개, 닭, 돼지도 여러 마리씩 사들이니라.
  • 치성을 준비할 때는 대문 입구에 금(禁)줄을 치고 마당에 차일(遮日)을 친 다음 자리를 깔아 그 위에 제단을 쌓고 병풍을 세워 신위를 모시며
  • 10 대문 양쪽에는 (燈) 두 개를 달고 장정 두 사람이 대문을 지키며 출입을 금하니
  • 11 아무나 함부로 출입하지 못하고 고민환만이 자유로 출입하면서 태모님의 명을 받들어 치성 준비를 감독하니라.
  • 12 이렇게 하여 치성이 시작되면 시종 엄숙한 가운데 진행하거늘 시천주주와 태을주를 비롯하여 여러 주문을 읽는데
  • 13 태모님께서는 신도(神道)가 내리매 주송은 하지 않으시고 묵송을 하시니라.
  • 14 신도들이 치성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마당에 깔아 놓은 멍석에서 지역별로 수십 명씩 모여 한꺼번에 절을 하고 물러나거늘
  • 15 태모님께서 노고를 치하하시며 손을 들어 답례하시니 신도들은 이것을 영광으로 알고 돌아가니라.

  • (증산도 道典 11:131)




  • 1절 131:1, 3~15 치성을 모실 때면 앞마당 뒷마당 할 것 없이 사람들로 꽉 찼으며 잠잘 데가 없어서 마당에 덕석을 깔고 잤다. 밥도 그릇에 제대로 받쳐 먹는 사람은 아주 잘 먹는 사람이었다. 이 때 성도들은 태모님께서 이름을 한 번 불러 주시기만 하여도 큰 영광으로 알았다. 치성은 주로 하절기에는 오전 7시 30분, 동절기에는 오후 7시 30분 경에 올렸다.(당시 상황을 여러 차례 지켜본 강용과 전복추 증언)
  • 2절 131:2 당시 원조 마을에 살던 강원섭 성도의 조카 강순기(姜順基, 1915~ ) 증언. 강순기 씨는 18세에 천종서 성도의 셋째 아들 병권(炳權)과 혼인하여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